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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6 연극 엘리모시너리-비범한 재능을 가진 삼대에 걸친 세 여자들의 이야기
2010. 1. 26. 00:34
기행과 도피, 강요와 외면이라는 과거의 기억과 부정적인 선택을 벗어나 알을 깨고 날아올라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새롭게 출발하는 삼대에 걸친 모녀의 이야기이다.
-엘리모시너리 홈페이지, 기획의도 중에서.

 

엘리모시너리 eleemosynary

‘엘리모시너리’. 하늘로 날아오른 세 모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왜 세 모녀가 하늘로 날아올랐는지는 연극을 보고 나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이 작품은 1985년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처음 공연되었고, 1987년 희곡으로 발간되었다. 1997년 로스엔젤레스 드라마 비평협회 상(Los Angeles Drama Critics Circle Award)를 수상한 작품이다.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손녀까지 삼대에 걸친 비범한 재능을 가진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 블래싱이라는 작가의 시선이 참 날카롭고, 성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조각 한조각의 천 조각들을 바느질 해 만드는 조각보처럼 조각조각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한편으로 탄생한 것을 보면 말이다.




줄거리 그리고 ….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던 외할머니. 그러나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해야만 했다.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소녀(외할머니)를 그녀의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보다 고등학교가 중요하다니…. 그녀의 남편은 나중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이를 낳고나서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루지 못한 외할머니(도로시아)는 점점 괴팍해졌고, 온갖 특이한 행동들로 유명해졌다. 날개를 만들어 딸(아티)에게 메어주고는 언덕에서 달려 내려와 날아보라는 둥, 전기 철탑에서 뛰어내리라는 둥 이해하지 못할 행동

외할머니 도로시아(왼쪽)과 딸(엄마, 아티) 그리고 가운데 영상 속 인물이 손녀, 에코우다.

들을 한다. 하지만 이 기행들을 연극이 끝날 때쯤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외할머니는 자신의 권리를,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기이한 행동들 속에서 찾아갔던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모습이, 정신 이상을 가진 여자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해 보였던 것은 왜일까? 외할머니는 이런 상태였다. ‘난 참 운이 좋다. 오늘은 산책을 하다가 링컨대통령을 만났지 뭐냐? 링컨대통령이 구두를 닦고 있기에 대통령이 직접 구두를 닦으시네요 하고 물었더니, 아 글쎄 그럼 대통령이 남의 구두도 닦아줍니까? 하지 뭐니?’ 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할머니다 싶었다.

이 도로시아 역을 한, 이정은이란 배우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대사 속에 감정을 가득 실을 줄도, 유머를 담을 줄도 아는 배우 같았다. 다음엔 그녀의 연극을 직접 한번 찾아서 볼 생각이다. 머릿속에 각인될만한 배우였다. 이전에 내가 봤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도 나온 배우라는데, 그때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


엄마 아티는 한 번 들은 것을 잊지 않는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 하지만 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남들은 머리가 좋아 좋겠다고들 하지만, 나는 무덤의 비석이 된 것 같았다고. 한 번 새겨놓으면 지워지지 않는…. 연극을 보면서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입장들을 이해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엄마와 딸 이야기 그리고 그 딸이 다시 엄마가 되고 그 엄마에게 다시 딸이 생기는 과정을 통해서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면 그때가 되어서야 이해가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나도 엄마니까, 예전 엄마가 왜 그랬는지 이해되는 부분이 참 많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가는 연극이었다.

아티, 그녀의 대사들 속에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잊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던 것 같아. 도저히 엄마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어 도망쳐버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도망친 엄마, 아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낳은 딸, 에코우. 에코우 또한 엄마처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소녀다. 엄마, 아티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자 다시 외할머니에게 에코우를 맡겨놓고 유럽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아마 그 또한 엄마에게서 도망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에코우는 엄마를 닮아 아주 뛰어난 머리를 가졌다. 낱말 맞추기 전국대회에서 보란듯이 1등을 하고 만다. 에코우의 요구는 자신이 1등을 하면 엄마가 그날 와서 외할머니와 포옹하는 것.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기를 바랐던 것이겠지.
에코우는 자신을 찾지 않는 엄마, 아티를 어려워하면서도 사랑받고 싶어한다. 결국 머리도 뛰어나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닌 에코우가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엄마 또한 자신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이미지야 말로, 내 머릿속에 남은 이 연극의 잔상을 가장 잘 표현한 것 같아 올려본다. ^^ 기이한 할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세 사람의 일생과 생활 모습, 생각들을 조각조각 조각보를 깁듯이 관객에게 드러내 놓는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또한 연극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또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손녀는 손녀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마디씩 내 뱉는데,
꼭 돌림노래처럼 내놓는 이 이야기들이 나중에는 세 사람이 서로에게 가진 사랑 그리고 그리움 등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응어리들이 하나 둘 풀려간다.

엘리모시너리, 삼대에 걸친 한집안 세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관계’에 대해서, ‘용서’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나 그리고 엘리모시너리

연극과 뮤지컬, 오페라 등 공연을 즐기던 내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이런 공연을 단 한편도 보지 못했다. 영화는 일 년에 한두 편 보긴 했지만, 연극 같은 공연을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일하는 엄마라 늘 주말은 아이와 붙어 지냈다. 평일에 떨어져 있는 것이 너무 미안했기 때문에. 레뷰 덕분에 너무 좋은 공연을 관람했다.

엘리모시너리. 난 지금 엄마다. 한 아들을 가진. 하지만 그 전부터 나는 딸이었고, 지금도 딸이다. 우리 엄마가 예전에 했던 말들이, 힘들어 했던 부분이, 행복해 했던 부분이 지금은 모두 다 이해가 된다. 나도 엄마니까. 우리 엄마가 했던 고민들, 행동들, 일들을 지금 내가 겪고, 하고 있으니까.

이 연극 엘리모시너리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딸인 사람들이 보면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세 번째 줄에 앉아서 연극을 관람했는데, 첫 번째 줄에 앉은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엄마 한 분은 공연 내내 울고 계셨다. 그만큼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엄마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나 또한 종반부에 가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시울을 적실 수밖에 없었으니까.

기억에 남는 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외할머니가 손녀를 오랫동안 키우면서 정을 듬뿍 줬는데, 죽은 후 이런 대사를 한다. 정확히 외우지는 못하지만 이런 내용인데, ‘내가 인생의 마지막에 나의 모든 것이 에코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야. 그것은 내 딸, 아티였어.’ 그러니까 자신은 자신을 떠난 딸, 아티를 끔찍하게 사랑했고 그 딸이 잘 되기를, 행복하기를 내내 빌면서 사랑하는 딸이 낳은 딸을 돌봐줬던 것이다. 손녀 에코우를 위해서도 물론 있겠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딸 아티를 향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엄마와 딸이 함께 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멋진 공연 한편 선물하고 싶다. 우리 엄마는 전라도에 계신데, 오시라고 해야 할까? ^^

나는 이 연극을 막내 시누이(신랑은 누나만 셋이다)랑 봤다. 같은 여자끼리여서, 같은 엄마여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레뷰, 좋은 공연 보여줘서 참 고맙다.^^



 
*여기 쓰인 이미지들은 모두 엘리모시너리 소개 홈페이지(몽씨어터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Posted by 異眼(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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