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수명'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2.01 이별 그러나 오늘은 시작해야만 하는 날 (4)
2010. 2. 1. 12:49
이별 그러나 오늘은 시작해야만 하는 날

마음이 아프고, 무겁습니다.
오늘 아침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슴치'를 살폈습니다.
'휴~'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 졌지요. 둥글게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평상시에 자던 모습과 똑같아서요.
추울까봐 넣어줬던 수건을 슬쩍 들어올려 '또치'가 잘 있는지 살폈습니다. 가시를 세우는 또치를 보면서 또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슴치가 가시를 세우지 않네요. 어?
슴치를 만지다 눈물이 뚝 떨어집니다.
'슴치'의 몸이 차갑습니다. 딱딱합니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지난주부터 슴치의 상태가 심히 걱정이 됐습니다. 먹이도 먹지 않고, 물만 자꾸 먹고, 몸도 힘이 없어 비틀거렸거든요.
추울까봐 난방기도 내 곁 보다는 슴치 곁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슴치가 떠났습니다. 어쩌면 어제 저녁에 떠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픕니다. 많이….




이전에 제 블로그에서 '슴치'와 '또치' 이야기를 보신 분은 아실 텐데요.
슴치는 고슴도치입니다. 아프키란 피그미 헤치혹.
알비노이고요.
2006년 만난 친구입니다. 4년째 함께 생활을 했네요.
태어난지 두세달쯤 된 아이를 데려왔으니까 슴치의 평생을 저와 함께 한 셈입니다.
슴치는 특별했습니다.
알비노라서 더 챙겨주고 싶었고, 약한 아이라 더 애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 책, <알비노-유전자 이상이 만들어낸 색다른 친구들>에서도 슴치는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렇게 사진과 그림으로 함께했지요.

         몸을 또르르 말면 밤송이처럼 보입니다.
           고슴도치들은 이렇게 자신의 몸을 보호하지요.


     우리 슴치는 알비노였습니다. 흰 몸에, 빨간눈.
      전형적인 알비노의 모습이지요.
      옆에는 슴치의 짝, 또치도 밤송이처럼 말아서 '방가방가'인사했던 모습입니다. 


      신랑도 저도 슴치에게 애정이 많아서 다양한 사진들을 찍어두었습니다.
       위의 사진들 모두 슴치입니다.
       동영상도 많이 찍어두었는데, 저에게는 슴치를 추억할 좋은 자료가 되겠지요.
       하지만 슴치에게는 그 시간이 귀찮고, 힘든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슴치와 슴치의 짝, 또치 사이에서는 대부분 알비노가 태어났습니다.
알비노가 아닌 또치를 닮을 수도 있을텐데, 또치에게도 발현되지 않았지만 알비노 유전자가 내재되어 있었나봅니다.
슴치는 오늘 아침 떠났지만, 또치와의 사이에서 낳은 이 아이들이 슴치를 생각나게 할 것 같습니다.

남은 또치를 잘 보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또치는 알비노는 아니라서 슴치보다는 씩씩하고, 건강하지만 나이가 많거든요.
거의 슴치랑 비슷한 나이니까요.
애완용으로 키우는 고슴도치들은 5년 정도 함께사는 것 같습니다.
알비노는 조금 덜 사는 것 같고요.

오늘은 아침부터 이별을 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오늘은 월요일이고, 2월의 첫날인 1일 이네요.
자꾸 뭔가 새롭게 시작하라고 재촉하는 날이지요?

슬프지만, 새로운 하루로 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책 속 슴치를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동영상 속 슴치의 모습에 자꾸 눈이 갑니다.
가슴에 품고 잠들었던 몇년 전으로 자꾸 돌아가고 싶어 집니다.
뱃속에 후가 자라고 있을 때 제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꼬물거리던 녀석이 바로 이 슴치였거든요.
오늘은 흐린 날만큼이 아픈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이별은 언제나 슬픕니다.
곁에 있을 때, 그 무엇이 됐든지 사랑하십시오.



Posted by 異眼(이안)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Kay~ 2010.02.01 1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걱.. 슴치가 생을 다 했군요!
    본지 꽤 오래되었는데.. 에궁.. 안타까워라..
    또치는 어떻게해요?
    또치도 같이 있던 친구(부인?)가 사라졌으니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또치 잘 다독거려주세요!

    • 異眼(이안) 2010.02.01 1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또치가 예민해진 것 같습니다.
      워낙 성격 좋은 녀석이었는데 말이지요.
      슴치가 수컷, 또치가 암컷이었습니다.
      떠난 슴치도 안타깝지만, 남은 또치도 걱정됩니다.

  2. 銀_Ryan 2010.02.01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알비노인 고슴도치 '알비'를 데리고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문장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먹먹하네요.
    아직 태어난지 10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가 주의를 살피지 않아서 한쪽 눈을 다치기도 했는데,
    이안님 글을 읽고 나니 더 잘해줘야 겠다는 생각만 계속 듭니다 ㅠ.ㅠ

    • 異眼(이안) 2010.02.02 0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비노 고슴도치를 키우고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알비노는 보통 고슴도치에 비해 약하고, 예민하지요? 아직 10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면 한창 뛰어놀 청소년기네요^^
      한참 눈에띄게 크고(10개월이면 거의 다 컸겠네요), 많이 먹고, 집에서 탈출도 감행할 나입니다.
      잘 보살펴 주세요. 행복한 추억도 만드시고요.^^